Michel Sicard | 파리1대학 조형예술학 교수, 시인
조소희의 작업은 단지 예술 사회학의 아바타로 여겨지는 ‘일상’에 관한 예술로 접근되어 왔지만 그의 작품의 의도는 늘 다른 곳에 있었다. 초기 작품은 일상적인 가제도구들(그릇, 접시, 냄비, 고무장갑 등)의 모양으로 오려진 얇은 알루미늄 판들을 조합해서 늘어놓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마치 동양인들의 부엌을 연상시키고, 언뜻, 도가의 빔(空)의 철학(philosophie du vide)으로 접근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또한 그의 작업 안에서는 모든 것이 반드시 오브제의 시선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점점 더 유희적 여지다가 마침내 서서히 사라지고 말 듯한 환타지의 가벼움만이 있었다.
이제, 이 전시를 물결치게 하는 투명한 그물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절대로 이 가정용 사물들의 실질적일 사용자나 악착 같은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사물과 그 반짝임, 의미, 그것을 통한 욕망, 환상등을 교묘하게 교환할 줄 아는 현학적인 실험자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폭력적인 도구들을 사용한 조소희의 작품은 탁월하다. (가위, 칼, 면도날, 주사기 등…) 이 작품은 기묘한 발레를 보는 것 같다. 재 조합된 오브제들은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흐름 안에서 영매처럼 떠오르게 하는 안무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언어는 독특한 가스를 내뿜으며 새로운 몸체를 만들어낸다. 마치 어떤 호상도시의 말뚝 위에서 휘날리는 이미지 같이 수많은 시들이 사는 거주지이기도 하다.
자, 이제 다른 차원이 시작된다. 겹겹의 투명한 감수성으로 지어낸 가벼운 공간, 그리고 날아오름의 순간 (작가는 심술궂게도 비둘기 이미지들을 핀으로 고정시킨다.), 혹은 리좀적(rhizomatique) 유동성의 영역이다.
‘아카이브'는 이 유동적인 흐름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체제, 구조, 상황적인(« contextuelles») 현실의 힘(le pouvoir)과 상관없이 우리는 조각과 파편들 사이를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소희는 저장고 같은 작업인 이전의 사진적 기억들을 놓아 버리고 실, 실 잦기, 둥근 실 뭉치나 실패들을 가지고 실뜨기 등의 주제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시도는 테마를 양분화시키기 위함이었겠지만 흥미롭게도 두 작업은 더욱 하나의 몸체가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만들어지고 부서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어떤 벌거벗은 실체와 같다. 멈추지 않고 흐르며 고정되지 않는 시간의 영토 속에 사는 모든 것은 다 ‘중간상태’ 로 존재한다. 이것은 아마도 페넬로페이아가 베를 짜고 푸는 동안 욕망과 수많은 날들의 뿌연 후광이 아주 조금씩 갉아 없어지는 것 같은 ‘중간 상태’ 로의 시간들일 것이다. 조소희의 작업은 이런 의미 안에서만 비로소 '실을 짜는 예술'의 의도가 설득 될 수 있다. 코바늘 뜨기의 그물은 스타킹 모양으로, 브레지어, 팬티 혹은 자신의 몸을 싸는 껍질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반 고호의 의자 위에 무기력하게 남겨진다. 한편, 의자들과 무게를 잃어버린 침대는 어릴 적 몽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매일 쓰는 물건들과 옷들은 마치 우리의 일상을 품고 있는 이 기묘한 번데기들로부터 나온 하늘하늘한 나비처럼 공간을 아우르고 있다. 살짝 스침/ 잎이 떨어짐 (effleurements/effeuillements), 신기한 리듬의 날갯짓을 만나게 된다. 이 새롭게 변화된 시간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