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채집 - 작은 다큐멘터리

이은주 | 전시기획자, 미술사

조소희의 작업은 개인의 특정한 사적 공간 속에 놓여져 있는 오브제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친구인 지영의 장롱, 가족의 신발장, 자신의 부엌, 샤를리라는 한 특별한 소년의 방. 이러한 공간 속의 모든 기물들에는 사용자의 취향과 개성, 관계와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 개인의 경험이 축적된 시간의 역사가 묻어있다. 작가는 그 사물들을 하나씩 카메라로 찍는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아주 미세한 핀 하나, 작은 클립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 한다. 그리고 마치 식물표본을 채집하듯이 투명한 필름 위에 복사한 사진 이미지들을 CD 박스나 액자 틀 속에 끼워 넣고 순서대로 나열하여 집적한다. 조소희가 타자의 공간 속 사물에 대하여 보이는 이 집요한 관심은 어쩌면 타인의 일상 엿보기를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에게 부과된 일상의 끈질기고 반복적인 권태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조소희가 추적하는 일상의 단편들, 개인적 공간의 편린들을 따라가면서 나는 마지막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편집증적인 채집의 결과적인 효과가 시적(詩的)이라는 사실에 일종의 역설과 유머를 느끼게 된다. 그 지루하고 단조로운 과정을 남김없이 통과한 후의 가벼운 전환이랄까.

조소희의 이미지는 우리의 눈앞에 쌓여져 있는 버거운 일상의 과제들과 관계들이 멀리서 바라보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경쾌하고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작업이 지니는 아름다움은 이처럼 집요함과 경쾌함, 무거움과 가벼움, 밀실과 광장이라는 양극을 이어주는 반짝이는 긴장감에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미시적인 세계와 거시적인 세계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서 커다란 사건과 존재를 구성하는 잔잔한 삶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어조는 센티멘털한 속삭임이 아니라, 집적된 덩어리처럼 분명한 모뉴망(monument)을 이루는 현실들이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일상을 소녀적 취향 속으로 퇴행시켜버리지 않는 당당한 사회적 존재감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소희의 작업에서 현실의 사물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분명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영화감독인 지영의 장롱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필름들, 그리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모티프가 되었다는 삼위일체의 성상화는 개인적 일상이 타자와 관계 맺고 있으며 사회로 확장되어 가는 소통의 통로임을 알려준다. 반면 샤를리의 방에서 볼 수 있는 체스판은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채 밀실 안에 침잠해 버린 예민하고 조숙한 지성과 사회적 소통의 실패에 대한 표식이다. 이처럼 우리는 조소희의 작업을 통해서 일상 안에 숨어있는 작지만 육중한 의미들을 읽을 수 있으며, 일상을 하나의 파노라마로 펼쳐보았을 때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사회적 의미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일상이 결코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열려있기를 희망하며, 타자의 일상도 결국은 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번잡하고 자잘한 소용돌이 속에서 소통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상의 작은 요소들 모두가 삶을 구성하는 빼놓을 수 없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여준다. 그렇기에 조소희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이야말로 담론이 아닌 살아있는 개인의 역사이며, 우리가 매 순간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실존의 현장인 것이다.